공주를 벗어나 발티고개를 넘어 부여로 이어지는 40번 국도를 따라가다 탄천면소재지인 삼각리에서 살짝 빠진다. 이곳송학리의 소라실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듯 하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되었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내가 마을을 동서로 갈라놓아 서쪽을 삼태봉마을, 동쪽을 매봉마을이라고 한다. 장승은 이 두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마다 세워 놓았는데 동쪽의 매봉마을 입구에는 사모를 쓴 신랑 장승이, 서쪽의 삼태봉마을 입구에는 족두리를 쓴 신부 장승이 서 있다.

  소라실마을에서 장승을 모시게 된 것은 풍수설을 따라서라고 한다.곧 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앞산이 등잔을 걸어 놓은 듯한 괘등혈이어서 항상 불을 뿜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 까닭 모를 불이 자주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면하고 마을의 태평을 빌려고 장승을 세우고 장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길가 둔덕 위에 세워져 있는 신라장승은 먹으로 눈과 입 모양을 그린데다가 나무로 코와 귀, 사모뿔을 덧붙여 제법 입체적이다. 깍은 턱 아래에 수염을 그리고 '東方天元逐鬼大將軍'이라고 써놓았다. 썩어서 쓰러지지 않으면 그냥 두기 때문에 대여섯 해 전 것부터가 함께 나란히 서 잇어 무리지어 있는 인상을 준다. 장승과 함께 키 큰 오릿대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오리가 물고기를 물고 있다. 장승 앞쪽으로 문인석(또는 동자석)을 둔 점도 독특하다.

  서쪽 입구에는 족두리를 쓴 신부 장승들이 서 있다. 이쪽에는 '西方地元逐鬼大將軍'이라고 먹으로 써있다. 마찬가지로 욋대와 함께 서 있다. 신랑 장승의 유괘한 표정에 비해 신부 장승 얼굴은 입매며 눈매가 다소곳한 편이어서 재미있다.

  소라실마을에서는 400년 내력의 유서 깊은 장승제를 해마다 지내므로 가 볼 만하다. 장승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부터 농기를 앞세우고 걸립하며 제관과 축관, 음식을 준비할 사람을 뽑는 것으로 시작하여 준비한다. 열나흗날에 온 마을을 돌며 하는 샘굿으로 전야제를 치르고 대보름날 아침에 소나무나 미루나무를 베어 장승을 만드는데 동쪽 매봉마을은 신랑을, 서쪽 삼태봉마을은 신부를 각각 만든다. 그래서는 농기와 오릿대를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면서 마을 한가운데에서 만나 서로 채단도 보내고 절도 하고 합궁도 시켜 장승의 혼례식을 치른다. 그것은 그대로 마을 혼사처럼 잔치 분위기를 돋우게 되니 양쪽 마을의 결합과 화합을 상징한다.

  그런 뒤에 남녀 장승을 각각 마을 입구로 모시고 가 욋대와 함께 세우고 장승제를 지낸다. 집집마다 소지를 올려 그해의 평안을 빌어주고 마을의 안녕과 풍작도 기원한다. 그러고 나서는 양쪽 마을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풍물을 치고 흥겹게 노니 한 해를 이렇듯 잔치로 시작하는 것은 신명나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