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가 깊은 계곡과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가을에는 갑사가 아늑하여 좋다는 말이다.갑사는 계룡산의 서쪽, 유성에서 공주로 가는 길에 계룡산을 왼쪽에 두고 한바퀴 빙 둘러 가며 그 의젓한 자태를 구경한 뒤에 다다르는 자그마한 절집이다. '으뜸 甲'자를 쓴 절 이름이 예사롭지 않거니와 이 절의 오랜 내력을 은근히 풀겨 주는 듯도 하다.
갑사는 백제 구미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기록으로 분명한 것은 무령왕 3년(503)에 천불전을 중창했다고 하니 어쨌거나 백제 웅진 시대의 주요한 사찰이었다. 통일 신라 때 세웠다고 짐작되는 철당간과 고려 때의 부도는 이 절이 역사를 거쳐 오면서도 꿋꿋하게 제 면모를 지녀 왔음을 말해준다. 천년의 내력을 지켜 오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모두 불탔던 것을 뒤에 하나둘씩 새로 세웠으므로 지금의 절집들은 조선 시대 중, 후반기의 것들이다. 대웅전에 1650년에 제작한 괘불이 보존되어 있어 초파일이나 중요한 재에 가면 내이 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절에는 선조 2년(1569)에 새긴 월인석보 판목(보물 제 582)이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엮은 월인석보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칭송한 것이다. 이 판목은 우리 나라에 남은 유일한 것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나서 한글을 이용해 처음으로 지어 낸 글인만큼 국어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본래 논산 쌍계사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대적전 앞을 지나 대웅전 경역으로 가다 보면 오른족에 자그마한 탑이 하나 있는데 공우탑이다. 절에서 짐을져 주면 혼자서 암자로 짐을 자르던 영리한 소가 있었는데 그 소가 늙어 죽으니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한다.대웅전은 갑사가 1579년에 정유재란으로 불탄 뒤에 자리를 옮겨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으니 1604년에 중건한 것이다. 갑사에는 중심 전각인 대웅전과 대적전말고도 강당, 응향각, 팔상전, 진해당, 적묵당, 삼성각 등이 있으나 절 전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매우 아담하고 포근하다. 대웅전 앞쪽의 돌과 흙을 억어 쌓은 맞담에는 기왓장으로 '吉'자나 '王'자 같은 길상문을 베풀어 무늬를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