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남서쪽의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신원사는 옛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백제 의자왕11년(651)에 고구려의 중 보덕화상이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뒤에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당시 국사였던 무학대사가 중창했다.
경내 동족에 중악단이 있는데 이곳은 신라시대 이래로 산신제를 올리던 곳이며, 조선 초에도 무학이 현몽하여 태조가 와서 산신제를 올렸다고 하니, 전래의 산악신앙이 불교와 또 국가적인 신앙대상으로도 결합된 모습을 주여 준다. 조선 태조가 본래 지리산 상악단, 묘향산의 것은 알 길이 없으니 국가적인 산악 숭배처로는 이곳이 유일하게 남았다. 중문과 대문까지 둘러 경내의 중심구역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단은 1879년에 다시 고쳐 쌓은 것이다. 중악단 건물은 처마를 받친 포작도 7포나 되어 매우 위엄이 있고, 단청을 새로하지 않아 그나마 옛말을 느끼게 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이다. 경내에는 그밖에도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80호), 독성각, 범종각, 영원전 등이 있고 향각은 중악단을 고쳐 쌓게 했던 명성황후가 고종의 만수무강과 국운을 빌었던 곳이라고 한다. 또 중악단 왼쪽의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31호로 고려 때의 탑이다.영원전 앞의 선방에서 세계 각국의 승려들의 와서 동안거와 하안거에 정진을 한다. 계룡산의 동학사나 갑사와는 달리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호젓한 맛이 좋은 곳으로 기도처로는 다시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