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은 공산성의 북쪽을 휘돌아감고 가다가 갑자기 그 허리를 꺽어 서남쪽으로 흐르게 되는데 거기에서부터 물살의 흐름이 잦아들어서인지 강가답지 않게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지니 바로 곰나루이다. 옛날표기로'고마나루'라고 하고 한 것은 '곰나루'를 한자로 적은 방식이었으니 곰토템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공주목 사묘조에는 "곰나루 남안에 웅진사가 있어 춘추로 향축을 내려 제를 올린다."하였는데 제를 받는 사연이 자못 애달프다. 곰냇골 동쪽 산허리 동굴에 암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곰나루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한 사람을 납치하여 같이 살게 되었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갈 때에는 큰 돌로 굴문을 막아 놓곤 했다.여러해를 사는 동안 새끼 둘까지 낳게 되자 이제는 도망가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굴문을 열어 놓고 먹이를 구하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남자는 벌써 도망쳐서 나루를 건너고 있었다. 암곰은 새끼들을 데리고 쫓아가서 울부짖었으나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슬피울던 곰은 그만 새끼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뒤로 곰나루에서 물고기도 잘 잡히지 않고 불상사가 자주 생기자 사람들이 사당을 모시고 수신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곰나루 가는 길 언덕 소나무 숲 사이에 사당이 있어 그 안에 돌로 된 곰상을 새로 모셔 놓았다. 본래 사당에 안치되어 제를 받았을 곰상은 1975년에 곰나루 부근 둔덕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국립공주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언제 모신 상인지는 알수 없으나 웅크리고 앉은 귀가 오롯이 솟고 앉은 다리선도 매우 부드러우며 34cm의 자그마하고 아담한 모습이다. 강가에서 건너 여미산을 바라보며 애처로운 곰 아낙을 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