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공주는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였던 적도 있었지만 매우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도시이다. 서울에서 바로 올 때는 조치운을 거쳐 36번 국도를 타거나 천안에서 바로 23번 국도로 해서 올 수 있는데 그리해서 공주에 입성하려면 반드시 긴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교를 건너야 한다. 멀리서도 보이는 이 금강교를 바라보면 공주에 닿는 설렘을 느끼게 된다. 해질녁에 금강교를 가로질러 공주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바로 왼쪽으로 공주 시가를 외호하고 있는 둔덕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공산성이다.백제의 공주 도읍 때에 궁성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 백제 역사에서의 웅진성은 바로 그곳인 셈이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강을 북쪽에 두고 있다.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의 한산성을 함락당하고 개로왕마저 잃고 쫓겨 내려온 곳이 공주였으니 가장 무서운 적이 북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왕이 538년에 다시 부여로 천도한 이유도 백마강을 북에 둔 사비성에 자리한 것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주유소 옆으로 난 경사 가파른 찻길이 공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공산성은 조선 시대의 이름이고 백제 때에는 웅진성이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흙성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지금 있는 석축은 조선 중기에 새로 쌓은 것이다.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폭이 좁은 산성의 전체 길이는 2.2km쯤이다. 서문 터를 지나 걸어서 한 10분 올라가면 공산성의 가운데에 이른다. 가는 길 오른족에 인조가 1624년의 이괄의 난 때 난을 피해 머물다가 평정 소식을 듣고 나무 두그루에 벼슬을 내렸던 자리라는 쌍수정이 있다. 조금 더 가서 난 네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진남루가 나오는데 이것이 공산성의 남문이다. 아래로 조붓한 오솔길이 내려다보이는데 쭉 따라 내려가면 공주 시내가 된다. 흔히 다니는 길은 아니라 그런지 낙엽이 늘 수북이 깔려 있어 운치를 더한다. 진남루 건물은 1971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진남루 앞의 넓은 터는 백제 때의 궁궐터로 짐작한다. 네 갈래길에서 곧장 난 길로 좀더 가다 보면 광복루 못미처 임류각터가 있다. '삼국사기' 동성왕 22년 (500)조에 "왕궁의 동쪽에 높이가 5척이나 되는 임류각이란 누각을 세우고 또 연못을 파 기이한 새를 길렀다"고 한 그 자리로 짐작된다. 웅진성에서 비로서 자리를 잡고 비교적 화평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2층 누각을 지어 놓았다.
거기에서 10여분을 능선을 따라 가면 공산성의 남서쪽 끝으로 동문터와 광복루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에서 성벽을 따라 쭉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연지가 나오는데 거기가 암문터이며 근처에는 세조때 세워진 절인 영은사가 있다. 이렇듯 공산성에는 조선 시대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 특히 갑오농민 전쟁때에 이곳이 치열한 격전지여서 공산성의 발굴할 때에 관군의 것으로 보이는 대포알이 여럿 발견되었다.
공산성의 가장 마지막 코스는 공북루이다. 이 공북루는 그렇게 먼 길로보다는 주유소에서 올라오다가 왼쪽 길로 빠지면 쉽게 갈 수도 있는데 가는 길에 민가도 몇 채 있어 공산성 안에서는 유일하게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공북루는 1603년에 옛 망북루터에 세운 2층 다락집이다. 그 앞족에 최근에 복원한 연지에는 잉어 몇 마리가 노닐고 있고,서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걸터앉아 노을지는 금강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산성은 공주시민들이 한적하게 자연에 젖어들고 싶을 때 거닐게 되는 산책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