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40번 국도는 고개 하나를 넘어서 이어진다. 이 고개는 부여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그리 험하거나 굽이지지도 않건만 이 고개는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1894년 외세에 밀리는 관리들의 폭정과 수탈에 견디다 못해'보국안민, 제폭구민'을 기치로 떨쳐 일어선 농민군이 이 우금치전투를 마지막으로 처절한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민군의 주요 집결지였던 정읍, 부안, 고창 등과 더불어 그 역사를 길이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불러 보아야 할 곳이다.1994년은 1894년에 못 이룬 갑오농민전쟁의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고부봉기를 기념하여 2월부터 시작된 갑오농민전쟁 100주년 기념행사는 10월30일 여기 공주 우금치에서 한 많은  농민군들의 넋을 달래는 추모제로 마무리되었다.
농민군이 스러져 간 지 꼭 100년이 된 1994년에야 이 우금치는 사적 제 387호로 지정될 수 있었다.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토록 뒤늦게 이루어진 것이야말로 지난 100년 동안의 세월이 농민군이 발뻗고 누울 수 없었던 세월이었음을 반증한다.
우금치 고갯마루에는 1973년에 세운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서 있다. 탑의 명칭이 '동학'이냐, '농민' 이냐, '운동'이냐 '전쟁'이냐 '혁명'이냐가 붙느냐에 따라 그 탑을 세운 건립 주체가 이 1894년의 농민봉기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곧 어떤 역사에 기대고 있느냐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탑은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유신정치로 폭정을 하던 당시 대통령 박정희 씨가 세우고 자신의 쿠데타를 농민군의 혁명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보이도록 하려 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탑 뒤편의 새김글에 새겨진 그 이름 석자를 뒷날 누군가가 돌로 뭉개놓아 분풀이를 한 흔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