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에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동학사는 계룡산 초입에 계류를 끼고 있다. 전설로는 오뉘탑 전설에도 나오는 사원조사가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조그마한 암자를 지었던 것을 회의홧상이 중창하여 처음에는 상원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 풍수지리하면 어디에나 이름이 끼이는 도선국사가 다시 중창하여 태조 4년에 (921)원당으로 삼았는데 신라가 멸망하자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 동계사를 지었던 인연으로 하여 뒤에 절 이름이 동학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절의 면목을 유지하여, 고려의 충신인 야은 길재가 고려 왕족과 포은 정몽주를 위하여 기도 했으며, 방랑시인 김시습은 조선 6대 임금이었던 단종과 정몽주, 안평대군, 김종서, 사육신등을 위하여 이곳에서 기도하였다. 지금도 초혼가과 숙모전, 삼은각이 있어 이들을 봉양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에 불탄 뒤로 새로 지어 현대식으로 단장한 오늘날 이곳은 주로 비구니들의 강원이 되었다. 늘 말끔히 단장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고찰다운 맛은 덜하나 개울가의 정자에 앉아 청량하게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노라면 마음이 맑아진다